[가수] 제이팝의 장점을 고스란히 '아이묭'

글 | 정 호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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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시점에 다시 제이팝이 화두인가?
● 틱톡, 인스타에서 인기끄는 "제이팝" 과거 오류 시정
● 아티스트의 '학창시절' '고향' '가족'은 예술 밑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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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산업의 전 분야에 걸쳐, 그야말로 돈버는 인간사의 모든 장르에서, 20대 청춘이 가장 경쟁력이 있는 분야는 다름 아닌 "노래와 음악"일 것이다. 소리로 대중의 관심을 끈다는 것은 그야말로 '생명력'으로 승부를 봐야하는 탓이다. 같은 예술 장르인 미술과 다르고 연기나 연출과도 맥락이 다른, 압도적 '청춘'의 영역이다.

노래는 가수의 '존재감'이 전부다. 어떤 가수의 장점을 설명한다는 게 어려울 때가 많은데, 그것은 이(理)의 영역이 아닌 일종의 기(氣)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 존재감에 작곡과 작사가 가능한 재능, 즉 천재성까지 더해지면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러한 재능은 육성이나 관리가 어렵다는 것.

그래서 한국의 아이돌 장르는, 아이들이 생명력을 '경영에 포섭', 즉 규격화하여, 기왕이면 남들이 모방하기 어렵게 복잡하게 꼬아 만든 일종의 전략 상품으로 다룬다. 아이돌 음악은 생산성을 위해 작곡과 작사는 전문가에게 외주를 주게 되고, 아이돌 멤버는 '퍼포먼스'와 '미디어' 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K-아이돌 산업이 성공 방정식을 찾아내긴 한 것이다.

1. 악동, 아이유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독특한 K-가수는, '악동 뮤지션'과 '아이유'다. 이들은 단지 어쿠스틱 기타 하나만을 들고, 그들의 청춘으로 포장된 '천재성'으로 한국 대중을 설득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거대 기획사나 자본 없이 이뤄낸 것이다. 물론 이들이 '기획사'에 포섭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을 키워낸 것은 거대한 몽골 초원, 혹은 가수로 데뷔하겠다는 열정 그 자체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 점은 이들이 이미 10대 중반에 "가수"의 꿈을 갖고, 기타를 배우고, 가사를 쓰고, 작곡 시작했다는 점. 정직한 청춘의 이름으로 노래를 불렀고, 대중들은 그들이 가진 "생명력"에 공감을 표시한 것이다. 기획사의 A&R로는 불가능한 영역을 "천재"들이 채워가며 케이팝의 공간을 확장한 것이다.

필자가 견문이 적은 탓에, 케이팝 바깥의 세계에서 이같은 "생명력"을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음악 전문가가 아닌 탓에 보통 유튜브를 통해 귀에 꽂히는 노래를 발견하면, 그 가수의 노래를 반복해 듣는 편인데, 최근 한국의 음악 시장에서 거친 청춘의 힘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데뷔 16년차인 윤하가 돋보였을 정도니.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일본"의 제이팝에서 그러한 가수를 만났다. 아이묭(Aimyon)이다.

2. "찐따가 고향을 지켜..."

한국의 한 유튜버가 붙인 그녀에 대한 해석이 흥미롭다. "인싸들이 빼앗아 간 찐따픽pick, 아이묭"이다. 그녀는 한 눈에 아이돌 가수가 아닌, 어쿠스틱 기타를 든 싱어송 라이터다. 구부정한 어깨, 단정치 못한 머리, 초점이 없는 눈동자, 헐렁한 티셔츠, 얼굴에 난 점, 심지어 치마가 아닌 바지... 한국의 마포구나 일본의 변방 도시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20대 '찐따픽' 외모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기타를 울려대며 부르는 노래들은 마치 고시엔 야구장의 치열한 청춘을 연상케 한다. 변화구 하나 없이 직구로 승부하는, 흔한 색 바탕의 검은 무늬 야구복을 입은 열혈 청년말이다. 동시에 1990년대 우리가 일본의 청춘만화영화 도입부에서 느꼈던 청량한 하늘, 반짝이는 풀잎, 하얀색의 구름, 그리고 교복을 입은 소녀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 아이의 고향이 '고시엔' 야구장으로 유명한 니시노미야(西宮)이란다. 오사카에서 멀지 않고, 한신 타이거즈 팬이 많기고 유명한, 일본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던 바로 그 도시다. 얘기를 듣자하니, 그녀는 이 도시에서 나고 자라 성장했고, 20대 시절 그 도시의 주점에서 맥주를 자양분 삼아 버스킹하며 청춘을 만끽했다고 한다. 니시노미야 출신의 포크 '가수'라니, 그녀에겐 정말이지 '고시엔'의 맨땅 느낌이 난다.

3. 고향의 색깔

제이팝의 장점엔, 가수의 고향이 여전히 살아 숨쉰다는 점이 자리한다. 한때 우리에게도 그러한 전통이 남아 있었다. 1970년대 남진과 나훈아의 대결은, 따지고보면 '목포'와 '부산'의 대결이기도 했다. 남진의 외모와 음색엔 목포의 구수한 향기가 느껴졌고, 나훈아의 외모는 전형적인 부산 사내의 찐한, 선굵은 남성미였다.

"기획사 시스템" 이전엔 분명 "고향의 색"이 있었다. 음악이라는 것은 원래가 "땅"과 분리가 될 수 없는 성질의 파동이다. 우리는 땅에서 영감을 얻어 그 위에서 춤추고 노래해 왔다. 악동뮤지션의 노래엔 한국의 도시가 아닌, 몽골의 초원이 떠오르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데뷔 초기 "아이유"의 눈빛엔 가난한 반지하 서민의, 야수의 강인함이 분명 배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한국 가수들은 고향을 잃기 시작했다. 언제쯤이었을까. 1세대 S.E.S 때였을까? 2세대 동방신기 무렵이었을까. 한국의 케이팝 가수들은 "재미교포"와 "외국인 멤버"의 색깔은 뚜렷해졌지만, 한국의 소도시의 이름은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빠리바게뜨와 편의점 CU, 롯데리아가 전국에 퍼진 것과 마찬가지 현상일 지 모르겠다. 전주에도, 청주에도, 강릉에도, 안동에도 똑같은 매장이, 같은 디자인으로, 천편일률적으로 채워졌다. 아이돌 음악판도 마찬가지가 됐다.

4. 가족이 키운다

아이묭의 음악에 대해 필자는 감히 평가할 능력이 없다. 다만, 도대체 그녀의 음악을 누가 키웠는 지는 궁금했다. 저러한 강인한 음색과, 건강한 표정과, 그리고 폭발적인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일까. 언제까지 "찐따" "오다쿠"나 "천재성"으로만 묘사해야 하나?

거의 모든 기록과 평론가들이 지목하는 원천은 그녀의 남다른 가족력이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가수를 꿈꿨고, 아버지는 음향기사를 하며, 심지어 부모님은 20대 초반에 결혼해 모두 6자녀를 두었다는 거다. 아이묭은 둘째고.

20대 솔로 가수는 절대로 '기획사'에 의해 키워지지 않는다. 엄정한 훈련도 중요하지만 이미 15년 넘게 가족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분위기, 가풍이 가장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는 누나와 형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오늘 아이들은 대개 형제자매 없이, 비좁은 아파트서 '학원'에 다니며 큰다. 아이묭을 보자마자, 마치 고레다 히로카츠(是枝裕和) 감독의 대가족 영화 <어느 가족>과 <브로커>가 떠올랐다. 옹기종기 가난복잡하지만 뜨거운 가족말이다.

5. "사랑을 전하고 싶다거나"

최근 일본에서 '틱톡' 챌린지로 유명해진 그녀의 노래, 愛を伝えたいだとか(아이오츠타에타이타도카)는 이미 2017년에 공개된 노래다. 6년이 흘렀는데, 이제야 내 귀에 들려오다니, 내가 게을렀던 건지, 아님 SNS의 위력인 지, 그야말로 놀랍기만 하다. 지금 들어도 너무 좋다. 압도적인 생명력.

제이팝도 드디어 적극적으로 소셜미디어 마케팅에 나선 듯 싶다. 단지, 마케팅의 능력일까.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제이팝이 드디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아이돌 음악이 아닌, 지역의 힘과 대가족의 조화를 품은, 솔로 가수, 밴드 가수,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친근한 동생이나 누나, 혹은 아저씨 같은 '솔직담백한 직구형 가수'를 가장 잘해왔던 것이다.

아이묭의 노래엔 과거 제이팝이 잘했던 거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성별을 가리지도 않는다. 이미 다 잊어버린 제이팝의 선배 영웅들의 유산이, 올해 27세가 된 솔로 여가수 '아이묭'에 집약이 되어 있다. 그녀의 노래 가사는, 청춘의 소설 한 페이지처럼 자신의 삶을 미화하지 않고 담백하게 묘사한다. 청춘 특유의 섬세함이 가사 한 마디 한마디에 녹아 있는 것이다. 노래 제목이 <하늘의 푸르름을 아는사람이여> 라니, <청춘과 청춘과 청춘>이라니. 너무 "닭살" 아니신가? 하지만, 그 닭살이 너무 좋은 밤이다.

아이몽 뮤직비디오 한 장면
일본의 제이팝은 자신의 가장 잘하는 것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PS.
1. 케이팝의 가수들이 "학창시절" 및 "고향", 그리고 "가족"을 잃을 경우, 그 생명력은 오래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음. 일본의 제이팝이 자신의 장점을 재발견한 것은 인상적.

2. 요즘 케이팝에서 주가를 높이는 <아이브>와 <피프티피프티> 노래를 리뷰를 한번 써보고 싶었는 데 번번히 실패. 어느 대목에 관심을 줘야할지 의미를 찾지 못해서. <큐피드>라는 노래는, 아예 케이팝이 아니었음.  

3. <아이묭>을 보고 우리 시절 너무 좋아했던 누나 <자드 ZARD>가 떠올라서 살짝 슬펐음.

4. 공부 잘해 서울로 올라간 인싸들이, 고향을 망친 것인가.

[POP] Aimyon, embody of Jpop's heritage

One of the most profound passions for the young (Juvenile and the 20s) is singing and dancing. Their passion is a genuine privilege, and their fiery passion is the source of power in progression.

They create "Liveliness" and "Vibes," fascinating the public in tandem with sound. Modern music and the vibes are an overwhelmingly youthful part of art that differs from graphic art, performance art (acting), or even filmmaking.

And singing is about the artist's independent talent attribute (presence). It isn't elementary to evaluate artists because singing can only be quantitative if they are under average. Each music artist has a vast range of composing, songwriting, and groove talents, so you have your own "Artist by era". Some prefer one over the other, the mastery of music quality. Here, the problem is that singers' talent, or the quality of the outcome, is so challenging to be nurtured. Singers' talent is something innate.

So the Korean idol genre treats trainees of teenagers' life force as a kind of strategic commodity that can be "captured by management," standardized, and, if possible, made complex to make it difficult for others to imitate. For productivity, idol music composition and lyrics tend to be outsourced to professionals, while idol members focus on 'performance' and 'media activities'. As a result, the K-pop industry has found a winning and stable management system.

1. Akdong Musician, IU

The unique K-singers in this regard are "Akdong Musician" and "IU". With just an acoustic guitar, they convinced the Korean public with their youthful "genius". Moreover, they did it without a big agency or money power. Sure, big management companies could pick them up, but their success would be more based on the strength of vastness of the Mongolian steppes, which was Akdong's homeland, or their passion for becoming singers that drove them.

And what's even more impressive is that they were already in their mid-teens when they realized they wanted to be "singers" and started learning guitar, writing lyrics, and composing music. They sang in the name of honest youth, and the public resonated with their "liveliness". These "prodigies" expanded the space of K-pop by filling in the gaps that A&R could not.

As I have comparatively little experience in the music area, it's not easy for me to feel this "vitality" in the world outside of Korea. I'm not a music expert, so when I find a song on YouTube that catches my ear, I listen to the singer repeatedly, but the power of raw youth has been diminished in the Korean music market in recent years. And I recently encountered such a singer in "Japanese" J-pop. It's Aimyon.

2. The geek only cares about her Hometown.

One Korean Youtuber described Japanese singer-songwriter Aimyon as this "Ousider's singer, stolen away by insiders". Despite not fitting the typical idol singer mold, Aimyon's music, which she performs with an acoustic guitar, is reminiscent of the passionate youth at Koshien Baseball Stadium.

She may appear as a typical 20's something in casual clothes with hunched shoulders, unkempt hair, and keeping moles on her face, but her songs paint a different picture. They evoke memories of a young baseball player in a plain black and white uniform, fiercely competing with a fastball without a changeup, and the clear sky, shiny grass, white clouds, and school uniforms often seen in introductions of Japanese youth manga movies in the 1990s.

Aimyon's Hometown of Nishinomiya is famous for its Koshien baseball stadium near Osaka. In addition, it is known for the passionate following of the Hanshin Tigers, a team often featured in Japanese novels. Aimyong spent her 20s busking in the city's pubs, enjoying her youth fueled by beer. As a folk "singer" from Nishinomiya, Aimyon embodies the Koshien spirit.

3. Hometown Color, More than Locality but musical identity

One advantage of J-pop is that it maintains the tradition of highlighting the singer's Hometown, a practice that was also once present in Korean music. In the 1970s, the rivalry between Namjin and Na Hoon-ah was a battle between the two singers' voices and between their hometowns of Mokpo and Busan. Nam-jin's appearance and tone exuded the distinct flavor of Mokpo, while Na Hoon-ah's masculine and robust appearance embodied the typical Busan man (A rough masculine guy).

Before the agency system became prominent, there was a strong sense of "hometown color" in Korean music fields. Pop music is associated with the nature and environment of its origin, and singers drew inspiration from their roots to sing and dance. This is why Akdong Musician's music transports listeners to the Mongolian grasslands instead of modern Korean cities. During her early debut days, "IU" had a fierce gaze that emanated the strength of a beast, a commoner from a poor semi-basement.

However, at some point, Korean singers began to lose their hometown identities. When this happened, perhaps during the first generation of S.E.S or the second generation of TVXQ. While Korean K-pop singers now clearly represent "Korean-American" and "foreign Asian members," the names of small towns have disappeared from the K-pop scene. It is akin to seeing <Paris Baguette>, convenience store CU, and <Lotteria> everywhere in the country, with uniform designs even in Jeonju, Cheongju, Gangneung, and Andong.

4. By the Last name

I am hesitant to judge Aimyon's music style, but I am curious about the source of her powerful voice, expressive style, and explosive energy. How long can I describe her simply as a "Weird," "Otaku," or "Genius"?

Most records and critics attribute her exceptional talent to her remarkable family history. Her grandmother and mother aspired to become pop singers, her father worked as a sound engineer, and her parents even married in their early 20s and had six children. Aimyon is the second oldest.

Great solo singers in their 20's are never raised or educated by 'Big agencies .'While strict training is essential, the atmosphere and family customs that family members create together for more than 15 years are crucial. My generation(the 1970s) learned a lot from our siblings. Nowadays, children often grow up without siblings, attending cram schools in cramped apartments. Seeing Aimyon reminds me of the big family movies by Hirokatsu Koreda, such as <Shoplifters>" and <Broker> - a family that is both tightly knit and complex in its poverty.

5. J-pop embrace Social Media

Her song "を伝えたいだとか愛," which recently gained fame in Japan through the TikTok challenge, was released in 2017. So it's been six years since its first release, and it's fantastic to think about whether I've been too lazy to discover it or if it's just the power of social media.

Regardless, listening to it now and being overwhelmed by its vitality is terrific. J-pop has finally embraced social media as an active marketing tool. However, it's not just due to marketing prowess. J-pop has rediscovered its greatest strength - being the most honest and direct singer, whether as a solo artist, band music, singer-songwriter, friendly brother or sister, or uncle who harmonizes with local power and large families, not just as an idol singer back up by big agencies.

Aimyon's songs embody everything that J-pop excelled at in the past. Her role models in J-pop are so diverse. Aimyon, who turned 27 years old this year, carries on the legacy of forgotten senior heroes of J-pop. Her song lyrics depict her plain life without glorifying it, capturing the unique delicacy of youth in every word. Her song titles <People Who Know the Blueness of the Sky> and <Youth, Youth, and Youth> may sound cliché and childish. Still, they give me goosebumps every time I listen to them. Fantastic. |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