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친군부 보수의 분열: 팔랑쁘라차랏당 vs 루엄타이쌍찻당
작성일 : 2023.04.08
글 | 김 홍 구 (전 부산외대 교수)
2023년 5월 총선의 관전 포인트는 누가 봐도 여권(친군부 보수세력)의 분열과 야권(반군부 개혁세력)의 약진 가능성이다. 여기서는 주로 "여권"의 분열에 대해서 설명을 해본다.
주요 친군부 보수세력은 현재의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3개 정당들-팔랑쁘라차랏당(People's State Power Party), 쁘라차티빳당(Democrat Party), 품짜이당(Thai Pride Party)-이다. 이 중 핵심은 팔랑쁘라차랏당이다.
이 당은 2014년 쿠데타 후 주도세력인 쁘라윳 짠오차(Prayut Chan-o-cha, 1954년생)현 총리와 당 대표인 쁘라윗 웡쑤완(Prawit Wongsuwan, 1945년생)이 만든 정당이다. 팔랑쁘라차랏당은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익을 좇아 이질적인 정치파벌이 연합해 만든 친군부 정당이었다. 정당의 핵심인물들은 탁씬계 정당에 소속되었던 정치인들이었다. 쌈밋(Sam Mitr) 파벌이라 불리는 탁씬정부의 대표 브랜드인 탁시노믹스(Thaksinomics)의 주요한 입안자들과 당 사무총장겸 농업협동조합부 차관직을 맡았던 '탐마낫 프롬파오 (Thamanat Prompow)' 등이 주요 인물이다.
팔랑쁘라차랏
이후 팔랑쁘라차랏당은 당권투쟁과 야권의 의회내 정부불신임 과정에서 자중지란이 발생해 다수의 의원들이 탈당함으로써 당세가 크게 약화됐다. 정당 선호도 여론조사에서도 팔랑쁘라차랏당은 하위권에 머물러 존재감을 잃어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당내 반발에 처해 인기를 잃어가던 쁘라윳 총리는 신생정당인 루엄타이쌍찻당(United Thai Nation Party)으로 옮겨 출마를 결정 했다.
이 당은 2021년 3월 쁘라윳 총리 측근이 쁘라윳을 지지하기 위해서 일찌감치 만들어둔 정당이다. 때문에 쁘라윳 총리는 팔랑쁘라차랏당의 당적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뒤에서 다시 언급 되겠지만 태국 총리후보의 자격은 하원의원일 필요가 없으며, 선거 전에 각 정당 3배수 추천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만 하면 된다. 쁘라윳은 정당 소속이 아니어서 당과의 관계가 그리 끈끈하지 않았지만, 당의 운영만큼은 쁘라윗 대표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태국 총리 임기는 최대 8년까지만 허용된다. 쁘라윳 총리는 2014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으나 개헌이 이뤄진 시점인 2017년부터 임기 시작으로 볼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그의 임기는 2025년 4월 6일까지로 되어 있다. 이는 총리 전체임기 4년 중 절반만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으로 쿠데타 이후 유지되었던 정치적 영향력의 쇠퇴를 의미하게 된다.
한편 팔랑쁘라차랏당은 현재 당 대표인 쁘라윗을 차기총리 단독후보로 추대했다. 쁘라윳 총리와 쁘라윗 당 대표는 2014년 쿠데타를 일으킨 동지이며 군대 내에서는 밀접한 선후배지간으로 보병 제21연대를 기반으로 한 태국판 하나회(부라파 파약, 동부호랑이그룹) 멤버이기도 하다. 루엄타이쌍찻당으로 옮겨간 쁘라윳 총리는 총선 후에는 (쁘라윗의) 팔랑쁘라차랏당과 다시 연합하여 연립정부 구성의 핵심세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양 당 관계가 좋아지지 않는게 문제다.
태국판 하나회
총리와 이름이 비슷해 헛갈리지만 "쁘라윗" 당대표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키가 작고 뚱뚱한 국방부 장관 출신이다.
쁘라윗은 태국정치에서의 (군부가 중심이 되는) 권위주의세력과 (민간정치세력이 중심이 되는) 자유주의세력간의 정치적 양극화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쁘라윗이 자신을 쁘라윳과 탁씬 전 총리를 수장으로 하는 세력사이에서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적임자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총선 후 연립정부 구성시 정치적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정치적 제스처일 것이다.
얼마 전부터 2018년 이후 해외망명중인 탁씬의 태국 귀국설이 퍼지고 있는 가운데 팔랑쁘라차랏당과 프어타이당과의 연정설이 대두되고 있다. 쁘라윗은 총선 후 쁘라윳과의 연대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프어타이당과 연정을 구성한 후 총리로 선출될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설이 무성하다.
현재 총선에서 승리하여 제1당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프어타이당에 대해서 군부 주도의 상원은 적대적이기 때문에 연립정부 구성과 총리 선출 시 상원의 지지를 받고 있는 팔랑쁘라차랏당의 역할이 기대돼서다. 군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상원은 총리 선출권을 갖고 있다. 태국 총리는 상하 양원 합동회의(상원 250석, 하원 500석)에서 과반 찬성을 얻은 후보가 선출된다.
탁신당과 연대?
2017년 헌법은 총리자격과 선출방식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총리후보는 하원의원일 필요가 없으며, 선거 전에 각 정당 추천명단(최대 3명)에 이름을 올리면 된다. 명단에 오른 후 총리 후보는 지역구 의원이나 비례대표 의원이 되지 않더라도 총리 자격에는 문제가 없다. 총리 후보를 내는 정당은 최소한 25석의 하원 의석(하원의 5%)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하원 과반수 표결로 총리에 선출될 수 있다.
그러나 헌법 272조 유보조항에 따르면, 최초로 원이 구성된 후 5년 동안은 500명의 하원의원뿐만 아니라, 250명의 상원의원도 총리 선출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최소 상하 양원 과반수인 376표를 얻어야 총리에 선출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2017년 헌법개정 추진 과정에서 선거법 개정과 함께 상원의 총리선출조항을 개정하고자 했지만 상원의 동의를 얻지 못 해 추진되지 못 했다.
2017년 헌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상원 관련 조항이다. 상원은 모두 20개 직능단체로부터 200명을 간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과도기 5년 동안에는 상원을 250명으로 정하되, 244명은 집권군부의 군사평의회격인 국가평화유지위원회(NCPO, National Council for Peace and Order)가 선발위원회를 통해서 임명하게 되는데, 이 중 194명은 직접 임명하고, 50명은 20개 직능단체에서 간접 선출된 후보자 군에서 선발하게 된다. 나머지 6명은 군 최고사령관과 육·해·공군사령관, 국방담당 사무차관, 경찰청장이 임명된다.
결국 상원은 모두 친 군부 인사들로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2017년 헌법은 실제로 민정이양 후에도 5년 동안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명문화하면서, 군부의 권력 유지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상원 250명 전원 친군부
한편 집권세력의 핵심 정당이 분열 된 상황에서 연립정부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쁘라차티빳당과 품짜이당은 총선 후 제1당과 새로운 연립정부를 구성하려할 가능성이 많다. 현재 쁘라차티빳당은 당 대표 리더십의 위기와 당내 갈등(쁘라윳 총리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의 갈등)으로 많은 당내 중진들이 당을 떠나고 있어 당세가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쁘라차티빳당을 탈당한 인사들 중에는 쁘라윳을 차기 총리로 내세운 루엄타이쌍찻당으로 옮겨 간 인사들이 많다. 1946년 이래 태국에서 가장 오랜 정당 제도화의 역사를 갖고 있는 쁘라차티빳당은 2019년 총선에서 전통적 강세지역이었던 방콕에서 단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할 정도로 참패를 맛보았으며(직전의 2011년 총선에서는 33석 중 23석 획득) 텃밭으로 자랑하던 남부지역에서도 신생 팔랑쁘라차랏당과 아나콧마이당에게 밀려 당세가 크게 기울었다(직전의 2011년 총선에서는 52석 중 50석을 얻었으나 2019년 선거에서는 22석 획득).
최근에는 전 총리를 지낸 추언 릭파이(Chuan Leekpai, 1938년생), 아피씻 웻차치와(Abhisit Vejjajiva, 1964년생) 등 대중적 인기를 지닌 민주당 출신 인사들을 선거전 전면에 내세워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노력 중이나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대마합법화 '품짜이당'
품짜이당은 2019년 총선 후 여권 중 유일하게 정치세력을 확장시킨 정당이다.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간의 정치적 갈등이 만성화 되고 있는 정치 상황 속에서 중도정당으로의 적절한 자리매김이나 정치적 양극화를 지양하는 정책 등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 정치적 확장력이 기대되고 있다.
품짜이당 대표인 아누틴 찬위라꾼(Anutin Charnvirakul 1966)은 차기총리 다크호스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악재가 겹쳤다. 품짜이타이당은 2019년 총선에서 ‘가정용 대마 재배 합법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고 연립정부 구성 후 아누틴 당대표가 보건부 장관에 취임하여 대마를 합법화시켰다.
태국 전역에서 향락용 소비가 급증하는 부작용이 발생하자 제1야당인 프어타이당을 중심으로 야권의 거센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품짜이당은 당 사무총장겸 교통부 장관의 특정 건설사에 대한 이권부여 및 불법자금 수수 등으로 당의 이미지가 훼손된 상태이다.
아무튼 위 두 개의 보수정당들은 이념을 떠나서 총선 후 정치적 실리를 좇아 어떤 정당과도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품짜이당과 팔랑쁘라차랏당 중심의 연정설도 대두되었다.
총선을 앞두고 현 여권세력(팔랑쁘라차랏당, 루엄타이쌍찻당, 품짜이당, 쁘라차티빳당)들은 사실상 분열되어있거나 정치적 응집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는 상태이긴하나 총선 후 정치상황에 따라 다시 연정을 구성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팔랑쁘라찻당이라는 구심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지금과 같은 형식의 연정이 구성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여론조사를 통해 아직까지 쁘라윳이 현 여권내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총리후보이긴하나 그가 옮겨간 루엄타이쌍찻당이 여권 내 다른 정당보다 적은 의석수를 확보한다면 쁘라윳이 총리 후보가 되는 것은 힘들 것이다.
PS. 총선 이후 해석
- 프어타이당(탁신당)은 제1당으로 등극한 전진당과 연립내각을 공식화
- 군부 1-2당이 예상밖으로 대패함, 3당인 품짜이타이 당이 70석으로 의외로 큰 성공
- 친군부 정당들이 어떤 식으로 연립정권에 발을 들이긴 힘들듯. 결국 공은 "상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