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버마 시절』,『1984』
대학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닉네임이 오웰orwell이었다. 몇 번인가 그에게 “매일 맑스와 그람시만 읽는 사람이 하필이면 닉네임은 조지 오웰인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차분하게 “그는 어마무시하게 탁월하고 존경스러운 작가”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너도 한 번 읽어 보렴"이라는 권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지 오웰은 이미 유행이 한참 지나간 작가였다. 필자만 해도 청년 시절에 그의 책을 딱히 선택해 읽은 기억이 없다. 아마도 어린 시절에 접했던 그의 대표작인 『동물농장』에 대한 불쾌한 기억 때문일 수 있다. 동물 농장은, 어린이용 책으로도 번안되어 소개 되었는데, 동물이 등장해서 어린이들도 친숙하게 읽을 수 있다는 왜가 있긴 하지만, 실은 대단히 잔인하고 끔찍한 작품이다. 어린 시절 그 책에 포함된 으시시한 분위기의 카툰이 떠올라 조지 오웰은 언제나 음울한 작가로 각인되었다.
조지 오웰(1903~1950)은 미얀마(혹은 버마)를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는 필독서에 속한다. 조지 오웰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는 식민지 버마의 어두운 역사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과 버마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더 블레어Eric Arthur Blair다. 그는 19살에 영국의 명문학교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동기들이 모두 대학에 진학했을 때 그 꽃길을 마다하고 인도 식민지 경찰에 자원했다. 당시만 해도 버마는 인도 제국의 한 지방에 속해 있었다. 그는 버마에 배치돼 1922년부터 1927년까지 만 5년 반을 근무한다. 그렇게 그곳에서 한동안 잘살다가 뎅기열로 런던에 복귀한 직후 갑작스럽게 경찰 일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변신한 것이다. 만일 그가 뎅기열에 걸리지 않았다면 적어도 20대 내내 경찰로 일했을 테고, 이후 특별한 이직의 계기가 없었다면 아시아에서 고위 경찰로서 2차 세계대전과 1948년 버마 독립을 경험했을 지 모른다.
10대 후반의 청년 오웰은 어째서 버마에 갔을까? 이는 집안 내력과 관계가 있는데, 그의 친가 할아버지는 인도 식민지청에서 아편 수출 담당자로 일했으며, 그의 외할아버지 역시 버마 남부 몰메인에서 사업을 한 탓에 그의 모친이 버마에서 태어났다. 집안 대대로 인도-버마와 강한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런던에서 자랐지만 어릴 적부터 부모의 고향인 벵골 만(인도와 버마)에 대한 얘기를 수없이 들었을 테고, 어린 시절 작가가 꿈이었던 그는 돈도 벌고 여행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상당한 권력까지 지닌 인도-버마의 경찰에 호기심을 느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국주의 경찰로 일한 경험이 식민주의와 전체주의 그리고 ‘현대성’ 사이에 엉킨 모순과 음울한 디스토피아에 대해 고찰할 기회를 그에게 선사한 것이다.
『버마 시절』
그가 쓴 가장 유명한 작품 『1984』와 『동물 농장』은 현대인의 상식에 가깝다. 많은 분들이 고전 도 그의 데뷔작은 생각만큼 널리 읽히지 않고 있다. 1934년 그의 나이 30살에 내놓은 장편 데뷔작이 바로 『버마시절Burmese Days』이라는 체험적 장편소설이다.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추천하지만, 이미 90년 전 소설이기도 하고, 생소한 인도-버마 문화를 알아야 하는 장벽도 있어 쉽사리 재미를 느끼기는 어렵다. 서른 살 꼬마(?)가 쓴 소설이지만 현대문학 최고 거장의 데뷔작인 만큼 그 울림이 상당히 묵직하다.
그런데 버마에서 이 책은 상당 기간 금서이기도 했으며 지금도 많은 미얀마 젊은이들이 상당히 싫어하는 책 가운데 하나다. 웬만하면 미얀마에 가서 『버마시절』은 언급하지 않는 편이 좋다. 이 책이 유명하지 않은 이유도 식민지 문학인지 아니면 제국주의 고발 문학인지 성격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이걸 한국과 일제에 적용하면, 조선에 파견 나온 일본인 경찰이 식민지에서 보고 느낀 조선인의 아둔하고 비참한 모습을 소설로 구체화해놓은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독립 이후 많은 버마인이 이 책을 읽고 상당한 모욕감을 느꼈나 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의 모티브는 그가 경찰로 일하며 보고 느낀 미얀마 사회의 후진성이며, 그 정글 같은 전근대성 속에서 무너져가는 평범한 영국 남자의 삶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 깔린 전반적인 정서는 "나는 버마가 너무너무너무 싫다"에 가깝다. 밤마다 개가 짖어서 잠을 설치고, 모기 떼가 덤비고, 과거에 헤어진 정부情婦는 매일 찾아와 돈을 달라고 떼쓰고, 이웃한 버마 부자와 인도인 의사는 서로 그를 이용하기 위해 알랑거리고… 영국인 동료들 역시 하나같이 허위에 찌들어 있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주인공은 결국 자살로 삶을 매조지한다. 자신이 키우던 개를 먼저 죽이고서 말이다.
오웰 철학의 실질적 맹아
오웰은 2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식민지 경찰로서 한 지역, 대략 20~30만 명의 버마인을 관리하는 영국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권력을 부여 받았다. 그는 여기서 권력의 본질에 대해 깊이 반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소설이 단순한 설정에도 그리 단순하게 해석되지는 않는 배경이다. 특히 이 "버마 시절"은 오웰의 전반적 철학의 실질적 맹아가 담긴 작품이기 때문에 새롭게 해석할 대목이 여럿 있다. 인종문제, 국가의 문제, 제국의 문제, 진화론, 미신, 아시아주의, 동남아 등이 바로 그러한 주제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필자가 가장 공감했던 대목은 주인공이 식민지 버마 생활에 접하고 느끼는 너무도 싫은, 일종의 "혐오"의 감정이었다.
이것은 같은 아시아인인 필자도 경험한 일이다. 미얀마에 잠시 거주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으아, 버마에서는 너무 덥고, 길거리는 더럽고, 음식은 맛없고, 모기 많고,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못살겠어”라고 진심으로 투정을 자주 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본 지인 한 분이 “너 왜 이러니? 미쳤니? 어디서 국가 비하를 하고 앉았어?”라고 거세게 쏘아붙이셨다. 그런데 이것은 장기 거주를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1~2주 정도의 단기 일정으로 미얀마를 여행하는 사람이야 모든 불편함을 참고 즐거운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막상 현장에서 살아보려고 온 사람에게는 모든 불편함이 삶의 순간 순간 가슴팍에 비수가 되어 날아와 꽂힌 것이다. 조지 오웰이 느꼈던, 뭐 그런 분노 같은 것을 느끼는 순간이 너무 자주 찾아온 것이다..
압도적인 자연의 힘과 위력 앞에서 인간 문명의 편리성이 너무도 간단하게 무너지는 것을 접하는 순간. 아마 22살의 오웰도 이 점을 느끼며 이 소설을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천하의 오웰도 식민주의는 극복하지 못했구나, 하는 동질감도 들었다. 그는 평생을 사회민주주의자로 살면서 현대성의 미래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투쟁했지만, 결국은 제국주의라는 시대적 한계는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그건 필자도 마찬가지일 테고. 필연적 한계이자 같은 아시아인의 향후 과제가 아닐까 싶다.
PS
1. 이 소설은 거장에 대한 기대를 내려두면 생각보다 재미를 느낄 수 있음. 또 버마인을 조선인으로 바꾸고, 인도인은 중국인 화교 정도로 치환해서 상상하면 더 쉬워짐.
2. 곰곰이 생각해보니 『버마시절』에 대한 세계인과 버마인의 인식 차이가 바로 현재 전 세계가 직면한 글로벌과 자주권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간극이 아닌가 싶음. 최근 불거진 ‘블랙 리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이나 한국에서의 일본군 성노예 문제 또한 이러한 인식과 맥락을 공유함.